묵상나눔
헬라인중 몇명이 예수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입니다.
즉 유대교 신앙을 가진 이방인이지요.
이방인들 중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두 부류가 있는데, 첫번째는 '할례'까지 행함으로 완전히 유대공동체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이 경우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을 믿지만 '할례'는 행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현대에 할례는 간단한 수술이지만 당시는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큰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적을 바꾸는 의미가 있기에 문화적 사회적 현실적 거부감이 굉장히 컸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만 할례만큼은 행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헬라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두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평소 신앙적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그렇다고 유대공동체에 완전히 들어간 것도 아니기에 유대교 안에서 주변인 취급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던 자들이 예수님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만나겠다 안마나겠다' 라고 대답하는 대신에 자신이 어떠한 죽음을 죽을 것이지 말씀하십니다.
왜 이런 식으로 대답하신 것일까요?
주님은 자신의 사역이 유대인을 넘어 세상으로 확장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즉, 예수님은 “헬라인을 만날 것인가?”라는 좁은 질문을 넘어서, “어떻게” 모든 민족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것인지, 그 구원의 방식에 대해 대답하심으로 그들은 근본 의문을 해소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곧 헬라인들도 할례 없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이로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온전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으심은 종교와 인종의 장벽마져 무너뜨립니다.
인류문명은 온 갖 이유로 선을 그어 사람들을 차별했으나 주님은 자신의 피로 그 선들을 지워 버리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주님께서 지운 선을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시 그으며 세상과 담을 쌓는 것 같습니다.
대광성도들은 선을 지우며 살면 좋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다소 동문서답 같은 내용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심 감사
선을 지워주시고 주님의 자녀 삼아 주심 감사
어제 격주 목요일 아침에 하는 목사님들 책 읽기 모임을 우리교회에서 했습니다. 마음을 나누며 서로 격려했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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