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요한복음 12:1-11 (사랑과 탐욕) + 세가지 감사
    2026-03-11 07:17:54
    박영모
    조회수   29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님을 향한 두 사람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대조합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싸고' '순전한' 나드 한근을 예수님에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당시 여성들은 결혼을 위해 오랜동안 향유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향유는 결혼 지참금으로 쓰이거나 중요한 순간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 가치를 전부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당시 여성에게 머리는 여성의 영광이자 여성성이 상징입니다. 
    때문에 공공 장소에서 머리를 풀지 않습니다. 
    발은 닦는 일은 노예가 주인을 위해 하는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영광과 여성성, 사회적 지위를 다 내려놓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반면 유다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4절에서 그를 역설적으로 소개하네요. 그는 '제자' 인 동사에 '예수를 잡아 넘길' 자 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난한 자보다 못한 취급을 합니다. 
    성경은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고 분명히 설명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이기에 그동안 주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을 다 보았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 오병이어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 등등
    가장 가까이서 주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고도 주님의 주되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안에 있는 탐욕이 그의 눈을 멀게한 탓이지요. 

    마리아의 행동은 주님의 장사를 예비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위대한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우리의 작은 수고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행하는 작은 일들이 당장은 어떤 열매를 만들지 알 수 없지만 주께서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마리아의 주님을 향한 사랑과 유다의 돈에 대한 탐욕은 닮아 있습니다. 
    다만 대상이 다를 뿐이지요. 
    마땅히 사랑할 만한 것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탐욕이 얼마나 우리의 눈을 가릴 수 있는 지 성찰할 수 있음에 감사 
    주님을 향한 우리의 작은 사랑도 주의 나라에 기여한다는 소망 주심 감사 
    어제 고모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고모님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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