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17절과 18절은 사건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는 것은 그의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살아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베다니가 예루살레에서 약 2키로(오리) 떨어졌다는 것은 같은 생활권이라는 뜻입니다.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은 예루살렘사람들이 모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에 앞서서 마르다와의 대화를 길게 기록합니다.
이 사건이 마르다 가족의 믿음을 위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고 말씀하시자
마르다가 마지막날 부활할 것이라 대답합니다.
예수님 당시(AD30년경) 유대인들은 분파에 따라 부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두개파는 부활이 없다하고 바리새파는 마지막날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는(AD100여년경)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자 사두개파가 사라져 버리고 바리새파가 유대공동체의 유일한 지도자가 됩니다.
즉 마르다의 대답은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 바리새파의 일반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유명한 말씀을 하시지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
주님이 말씀하신 부활이 바리새인들이 믿은 부활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핵심은 한가지 입니다.
마지막 날이 아닌 바로 "현재" 부터 부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게 되면 현재적 죽음을 이기고 현재부터 영원한 구원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활이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닌 지금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바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고 하신 주님이 '에고 에이미' 즉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헬라의 구원관과 우리의 구원관을 뒤집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헬레니즘의 이원론에서 구원은 영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현재 죽어도 육체가 다시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소생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이시지요.
반면 우리의 구원관은 나중에 죽어서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원이란 예수님을 믿는 이 순간부터 시작하여 영원히 누리는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현재성~!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곳에 임하였습니다. (물론 마지막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현재 삶의 자리에서부터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부활의 삶이 단지 죽은 이후의 일이 아닌 지금부터 누릴 수 있는 신비임을 알려 주심 감사
그 삶을 살기를 소망하게 하심 감사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지만 다시 무릎 통증이 있어 쉽니다. 대신 팔굽혀 펴기등 근육운동을 합니다. 다른 운동을 할 수 있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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