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요한복음 9:24-41 (역설적 논쟁) + 세가지 감사
    2026-03-03 07:27:50
    박영모
    조회수   29

    바리새인과 고침받은 사람의 대화가 흥미롭습니다. 
    바리새인은 종교 지도자이자 오래 배운 학식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고침받은 사람은 평생 죄인 취급 받고 글자조차 배운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이들의 대화를 보면 정반대 같습니다.  
    바리새인은 모세의 제자 운운하며 예수님을 죄인으로 낙인찍습니다. 
    그들은 지금 벌어진 일을 해석할 능력도 없었고,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세워놓은 틀에 모든 것을 가두어두려고 합니다. 

    반면 고침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지혜를 다 동원해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이중 31절부터 33절까지의 증언은 압권입니다. 
    '창세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임을 증거한다' 

    이사야서에 보면 메시아가 오셔서 눈먼자를 뜨게 하실 것이란 예언이 있습니다. (사 29:18, 35:5, 42:7) 
    이 예언을 잘 알았던 바리새인들은 그의 증언에 당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침받은 자의 정당하고 확실한 증언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를 쫓아내었습니다. 
    여기서 쫓아내었다는 것은 출교했다는 뜻입니다. 

    이로인해 누가 진짜 죄인인지 아닌지가 드러났습니다.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천국 지옥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누가 빛에 속한자인지 어둠에 있는 자인지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빛되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 평생 보지 못했던 자가 보는자요 믿는자로 인정받고
    모세의 율법을 잘 안다는 바리새인들이야말로 보지 못하는 자요 죄인으로 심판받았습니다. 

    이런 말씀을 볼 때마다 종교인으로서 긴장이 됩니다. 
    내가 바리새인에 가까운지 고침받은 사람에 가까운지 자문하게 됩니다. 
    종교인이고 말씀 교사이니 형태는 바리새인에 가깝겠지만 신앙과 삶은 고침받은 사람에 가까웠으면 좋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낮은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태어나 상처많았던 저를 주님 전하는 도구로 사용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새벽기도 설교하시는 우리교회 교역자들이 "맹인"이라는 차별적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성숙하도록 인도해 주심 감사 
    오늘부터 순장모임 시작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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