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요한복음 8:42-59 (불안에 잠식 당하지 않도록) + 세가지 감사
    2026-02-28 07:26:47
    박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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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극에 치닫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또는 귀신들렸다고 비난했습니다. 
    왜 이런 딱지를 붙였을까요?
    인지 부조화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이적들은 이제까지 그 누구도 행한적 없는 신적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자신들의  종교관을 충족시키기는 커녕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이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딱지를 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종교관과 충돌하는 이유는 그분이 사마리아 사람이기 때문이고 
    엄청난 이적을 행하는 이유는 귀신의 역사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지요.  

    인지부조화로 인한 이러한 딱지 붙이기는 역사에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멀리갈 것도 없이 우리가 거의 매일 겪는 일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성공을 하면 그 사람은 비리나 사기를 통해서 혹은 부모 덕분에 성공한 것이라고 깍아내립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정당하게 성공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요. 

    특이 이런 딱지 붙이기는 두려움이나 불안에 사로잡힐 때 많이 발생합니다. 
    최근 미국 사회가 이민자들에게 "불법"이라는 무분별한 딱지를 붙여 추방하는 일로 시끄럽습니다.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미국 백인 주류사회의 불안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 백인이 대다수 이고 타인종이 소수로 있을 때는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백인들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지요. 그들은 전혀 자신들을 위협할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타인종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인종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주류였던 백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는 다고 느끼고 그때부터는 타인종을 배척하고 딱지 붙이기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급격한 변화속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지위가 위협받는 다고 느끼자 반대세력을 더욱 배척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이신 예수님마저 배척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주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하나하나 성취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안에 잠식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가지 섰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습니다. 
    이 불안한 상황이 교회를 환대와 포용의 공동체가 아닌 배제와 혐오의 집단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 일부 기독인들은 특정 집단을 악마화 하며 배제하는 일에 압장서고 있지요. 
    이런 극단적 행위들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매일 불안과 싸우고 있습니다. 
    담임목회를 시작하고 한순간도 안심한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 40주년, 두번의 중직자 선거, 리모델링 이라는 직접적인 일들과 한국 사회이 급변 속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항상 전전긍긍합니다.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불안에 사로잡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덕분에 환대와 포용을 잃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안 때문에 나의 생각을 넘어서서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교회가 환대와 포용의 공동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가지 감사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인도해주심 감사 
    환대와 포용의 공동체를 열망하게 하시니 감사 
    어제 예수가온교회 특강을 잘 마쳤습니다. 근처에 좋은 교회를 알게 되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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