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오늘 본문부터 23장까지는 유다 주변에 있는 열강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제일 첫번째 대상은 바벨론 입니다.
(앞서서 앗수르, 아람,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나오지만 이는 아하스 이야기와 연결된 심판의 메시지 입니다.)
바벨론을 향한 심판의 예언이 매우 매우 끔찍합니다.
그들은 쫓긴 노루처럼 도망할것이다.(15)
창에 찔리고 칼에 엎드러 질것이다. (16)
메대인들이 심판의 대행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17)
청년을 활로 쏘고 태아와 아이도 죽일 것이다.(18)
이로인해 바벨론 땅은 소돔처럼, 들짐승이 사는 황무지처럼 될 것이다. (19,21)
이런 심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바벨론 사람들이 교만하고 폭력적이었더라도 이들에게 이런 식의 폭력을 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은 사이다 처럼 시원하긴 하지만 정의로운 일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대답이 있는데, 대표적인 세가지 해석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는 이 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이미 완결된 일을 예언으로 기록한 것이라 보는 의견입니다.
기록자가 교만했던 바벨론이 메대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역사적 사건을 보고 예언의 형식을 빌려서 미래의 일처럼 기록했다는 것이지요.
이경우 하나님의 폭력의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지만 이사야서의 저작 연대가 꼬이게 됩니다.
두번째는 과장법으로 보는 해석입니다.
여기에 묘사된 예언은 고대 근동의 전쟁문학의 표현 방식으로 수사학적 과장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들까지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자가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을 문학적으로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지요.
세번째는 인과 응보로 보는 것입니다.
고대근동의 정의는 인과응보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지요.
여기나온 심판은 바벨론 자신이 행한 일들을 그대로 돌려받는 것으로서 고대 근동에 관점에서는 전혀 문제없는 정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해석을 받아 들여야 할까요?
위의 세가지 해석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에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이 본문을 해석할 때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폭력과 심판의 저주를 끊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바벨론이 받아야할 저주와 심판까지도 짊어지고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폭력을 폭력으로 갚으신다는 오해가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른 폭력을 자신이 직접 대신 지시는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며 폭력의 결과와 심판의 무서움을 충분히 묵상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죄 지은 자들에게는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죄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기억하며 세상에 만연한 폭력에 저항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바벨론은 앗수르를 물리친 대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도 거의 없이 사라졌지요.
그들의 심판을 보며 인간의 미약함을 마주합니다.
아무리 힘 센 사람도 아무리 돈많은 사람도 막강한 권력자도 들의 풀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세가지 감사
어려운 본문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빛 아래서 보니 해석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초등부 고등부가 즐겁고 안전하고 은혜롭게 수련회를 한다네요. 감사
작년에 이어 막내 딸 없이 집에서 이틀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리 떨어지는 연습을 하게하심 감사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
| 1895 | 이번주 묵상은 새벽기도 설교입니다. ^^ | 박영모 | 2026-08-24 |
| 1894 | 이사야 31:1-9 (어미 새가 새끼를 품듯)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22 |
| 1893 | 이사야 30:18~33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 연준환 | 2026-08-21 |
| 1892 | 이사야 30:18-33 (일하시는 하나님)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21 |
| 1891 | 이사야 30:1-17 (패역한 자식 VS 진실된 자녀)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20 |
| 1890 | 이사야 29:15-24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9 |
| 1889 | 이사야 29:1-14 (인간의 이중성)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8 |
| 1888 | 이사야 28:14-29 (오시리스 VS 여호와)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7 |
| 1887 | 이사야 27:2-13 (적극적 수동태)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5 |
| 1886 | 이사야 26:1-27:1(심지가 견고한 나무) | 김현아 | 2026-08-14 |
| 1885 | 이사야 26:1-27:1 (희미해진 단어들)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4 |
| 1884 | 이사야 25:2-12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3 |
| 1883 | 이사야 24:14-23 (이미와 아직 사이의 괴리)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2 |
| 1882 | 이사야 24:1-13 (밀린 월세)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1 |
| 1881 | 이사야 23:1-18 (유명과 무명) + 세가지 감사 | 박영모 | 2026-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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