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눅22장 39-53절 "폭력을 정당화 하는 위험한 신앙"
2025-04-16 17:21:54
이경수
조회수 17
예수님을 잡기 위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달려왔던 종교지도자들의 폭력에 맞서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다.
요즘의 법적 관점으로 보면 폭력 앞에 자기 방어를 위한 정당방위적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종의 귀까지 고치시며 폭력 앞에 어떤 폭력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선언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비폭력 선언을 깊이 묵상하다보면 단순히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언어적, 비언어적, 정신적, 정서적인 폭력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분을 갖고 다른 이들을 향해 무섭게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단순한 도구로 쓰다 버리지 않으신다.
잘 쓰일 수 있도록 다듬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신다. 더 좋은 도구가 생겼다고 내버리시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분 아래 다른 사람의 헌신이나 아픔, 고통을 쉽게 평가하고 단정하고는 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당시 천대받던 종의 귀를 쳤던 베드로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시고 고통 속에 있던 종을 고치셨던 예수님의 뜻과 철저히 위배된다.
교역자로서 교회의 많은 일들을 감당하면서 성도를 대할 때 그들의 삶과 아픔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의 결정체임을
아로새기며 사역하는 일꾼이 되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하며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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