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야고보서 2:14-26 (상식적인 믿음) + 세가지 감사
    2026-10-19 07:47:14
    박영모
    조회수   36

    종교개혁을 일을켰던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를 강조했습니다. 
    당시 중세교회가 교인들에게 다양한 구원의 조건을 내건대 대한 반작용이었지요. 
    중세교회는 고해성사, 면죄부, 7성례, 금식 등 교회가 개발한 다양한 종교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지한채 교회의 전통을 지키는 급급했고 그러면 그럴 수록 사제에 종속되었습니다. 
    마틴루터는 이 부조리에 대항 하여 "오직 믿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루터의 입장에서는 야고보서의 내용이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와 같이  행하는 믿음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심지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선포합니다. 
    안타깝게도 마틴루터는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자신의 신학에 반영하는 대신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하며 폄하했습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루터 역시 시대의 한계를 안고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이처럼 믿음에 대해 의견차이가 나는 이유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믿음의 개념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몇가지만 예를 들면 믿음에는 불신, 미신, 맹신, 이신 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요. 
    오늘 본문만 봐도 행하는 믿음과 행함이 없는 믿음, 귀신의 믿음도 있습니다. 
    따라서 부분적인 것만 강조하고 그것만 옳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의 내용은 특이할 것 없이 매우 상식적입니다. 
    "형제가 헐벗고 있는데 말로만 평안하라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의 쓸것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무슨 이견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사실 비신자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고 하니까
    이 가르침을 자기 욕망을 합리화 하는데 적용하여 마땅히 해야할 베품과 나눔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예로 구원파는 이미 구원받은 자는 막살아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종교가 무섭습니다. 
    종교는 누구나 받아들이는 상식마저도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지요. 

    신자는 주님을 닮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살아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 고통당하는 자를 외면하실리가 없습니다. 

    지극한 상식이 우리에게 상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성경을 통해 믿음에 대해 풍성히 계시해 주심 감사 
    믿음의 상식을 상기시켜 주시니 감사 
    어제 높은뜻 섬기는 교회 첫날 말씀 사경회를 잘 섬기고 왔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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