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창세기 32:1-21 (두 떼) + 세가지 감사
    2026-04-29 07:33:19
    박영모
    조회수   16

    1절과 2절은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다고 언급합니다.
    이 부분은 앞 뒤 문맥과 연결되지 않는, 언뜻 보면 불필요한 내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보면 일종의 워드 플레이가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습니다. 
    마하나임은 '둘'을 의미하는 '세나임'과 양 떼 할때 '떼'를 의미하는  '마하네'의 합성어 입니다. 
    왜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두 떼(진영)" 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아마 자신의 진영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또 다른 진영, 이렇게 두 진영이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 장면에 나타납니다. 
    야곱은 에서가 사백명을 거느리고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소식에 큰 두려움을 느낀 야곱은 자신과 함께한 동행자와 가축들을 '두 떼'로 나눕니다. (7) 
    7절에서 사용된 두 떼를 나타내는 히브리어가 가 '세나임'과 '마하네' 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힘을 얻어 두 떼라고 이름을 붙였던 야곱이
    잠시 후 에서의 400명의 군대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소유를 두 떼로 나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안 앞에서 선 우리의 실존적 모습인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직접 보고 용기를 얻었어도 아직 눈 앞에 닥치지 않는 잠재적 위협의 소식만 듣고서도 큰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지요.  

    야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간구합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방법적으로는 자신의 소유물을 먼저 에서에게 보내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런 야곱의 모습을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라고 해석합니다. 

    왜 야곱의 행동이 불신이 될까요?
    신자는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져 기도만 하고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어려운 시험을 앞두고 잘보게 해달라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야곱의 행동을 이런 차원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그의 행동이 불신인 이유는 그 방법이 매우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자기가 돌봐야할 식솔들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먼저 보낸 자들을 에서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자신은 도망갈 지 대면할 지를 결정하려는 것이지요. 
    이런 야곱의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도, 고대 근동의 문화를 기준으로도 해서는 않될 짓입니다. 
    가부장의 제일 첫번째 덕목은 자신의 식솔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인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군대는 아직 자신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옆에 있음을 보고서도 그것을 일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의 문제는 상황이나 환경도 아니고 그의 내면에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지독한 이기심, 그 이기심에 기반하여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잔꾀가
    그의 인생을 복잡하고 힘들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야곱의 거울에 비추어 내면을 성찰해 봅니다. 
    나에게 두 떼는 어떤 모양으로 실제하는가? 
    내가 살려고 가정과 교회를 두 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군대로 인해  두 떼를 누리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세가지 감사 
    하나님의 군대로 안위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내면의 이기심을 성찰하게 하심 감사합니다. 
    어제 교구 목사님들과 장례 사역에 관하여 대안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마음을 모아주심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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