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사사기 1:22-36 (쫓아내지 못한, 쫓아내지 않은) + 세가지 감사
    2026-09-03 07:15:39
    박영모
    조회수   29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땅 정복에 대해 기술합니다. 

    두가지가 흥미롭습니다. 
    첫번째는 요셉가문이 벧엘(루스)을 정복한 내용입니다.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복할 때 어떤 벧엘 주민이 성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에 요셉 가문은 수월하게 성읍을 정복할 수 있었고 도와 준 사람의 집안을 살려주지요. 
    이는 라합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구원 받은 벧엘 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그곳 이름을 벧엘의 옛 이름인 루스라고 지었습니다. 
    분명 벧엘을 정복했는데 정복하지 않을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두번째는 28절과 35절에 나온 "강성"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다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가나안 족속이 더 강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성해졌음에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은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다"고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노비를 가지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그들을 그냥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이집트에게 종살이 했습니다. 
    이제 자유의 땅에 와서 누군가를 노비로 삼는 생활 방식을 선택합니다. 
    애굽의 질서, 가나안의 질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한 동시에 쫓아내지 않은 것입니다. 
    두려움과 유혹이 적당히 버무려진 결과 이지요.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지 않은 집은 언제든 무너질 위험에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모르지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날 때 그 위태로움이 곧 드러날 것입니다. 

    제 안에도 아직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이 있습니다. 
    이미 점령한줄 알았는데 남아있는 가나안과 유혹 때문에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이 있습니다.  
    조급함, 통제욕구, 너그럽지 못한 마음, 성취욕, 경쟁심...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내 안에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을 돌아보게 하심 감사 
    다시 싸울 수 있는 마음과 힘을 주심 감사 
    어제 한 권사님의 섬김으로 여름 사역으로 수고한 교역자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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