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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사람들이 은혜 받고
변화되는
것을 소망한다.
그래서 설교 중간에 성도들이 크게 “아멘”
하고 화답하거나
예배가 끝난 뒤에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인사라도
하면 설교자는 자신이
전한 메시지가 성도들에게 잘 전달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할 때 단지 성도들로부터
그런 반응을
듣는 것을 목적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길 소망한다면, 성도들이
그 설교를 들은 뒤에 실제
삶에서
그 메시지대로 살았는지를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만약 이런
확인이 없이, 단지 성도들이 설교자에게
해주는 반응만 가지고 자신의 설교가 성도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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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광교회(중랑구 신내2동 657-1 ☎02-3421-4778)를 담임
하는
김명섭 목사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통해 목회의
놀라운 변화를 맛본 목회자이다.
김 목사는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변하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도들
의 신앙과 삶의 모습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우연히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에 참석한 뒤,
목회 본질을 붙잡아야만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목사는 그때부터 목회의 본질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성도들의 모습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성도들의 모습에서 변화가 생기자
교회도 예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교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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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움직이면서 건강한 열매들이 계속 맺히기 시작했다.
“목회의 본질을 바로 알고 그것을 붙잡기만
하면 목회가 쉬워진다”고
말하는 김명섭 목사의 서울 대광교회 목회 이야기를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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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김명섭 목사가 처음 대광교회를 개척한 서울 성북구 장위동은
유난히 큰 교회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5년여 동안 이곳에서 목회한
김 목사는 개척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이미 큰 교회들이 그 기반을 뿌리내린 지역에서 개척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열심히 전도를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교회를 나가도 옆에 있는 좋은 교회 나가지
개척교회는 나가기 싫다’며 김 목사의 힘을 빼놓기 일쑤였다.
물론 아예 열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50여 명
정도로
성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50여 명 정도로
성장한 뒤에는 한동안 정체 상태가
이어졌다. 당시 상황을
김명섭 목사는 이렇게 회고한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교회가 전혀 성장하지 않더라고요.
개척해서 첫 1년에 한 50명
성도가 늘었는데, 그 이후 4년 동안 20명
정도밖에 교인이 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5년간 장위동에서 목회하면서 김 목사가 내린 결론은
‘이 지역에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김 목사는 교회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김 목사는 교회를 옮길 만한 장소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 무렵 인근 지역인 월계동에서 미성아파트를 개발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렇게 해서
1986년 6월에 월계동 미성아파트 단지
내 상가 2층 120평 공간을 예배실로 얻어 교회를 이전했다.
새로 이주한 지역은 확실히 목회 환경이 달랐다. 노력한 것에 비해
열매가 적었던 이전 지역과 달리,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보니 전도도 잘됐다. 게다가 지역 자체가 아무래도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여서 대광교회와 경쟁할 만한 교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대광교회는 이사한 지 1년 만에 2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다.
결국 70명에서 정체를 겪던
대광교회의 상황에서 월계동으로 교회를
옮기기로 결정한 김 목사의 결정은 매우 적절한 해결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 이사한 곳의 모든 환경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새 예배당 장소는 교회에서
사용하기에 몇 가지 불편한 요소들이
있었다. 가장 큰 불편함은 교회 문을 자기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가 출입구를 열고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새벽기도 시간도 상가 출입구를 여는 시간에 맞춰야 했고,
철야기도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상점 주인들이
대부분 불신자들이다 보니 조금만 교회가 시끄러워도 불평을 했다.
교육관도 변변치 못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100여 명이나 됐는데,
예배당 공간은 그 인원을 다 수용할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매주 눈에 띄게
성장을 계속했다.
여건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력한 만큼 열매를 거두는 것만도
김 목사는 감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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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평 예배당에서
200여 명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자 김목사
는 새로운 목회를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명섭 목사의 말이다.
“개척교회 때는 모든 신경이
교회 성장에
모아져
있었어요. 그래서 교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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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안 했어요.
그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죠.
그런데 교인이 한 200명 정도
모이니
까 이젠 교인들의 수준이 보이는
거예요.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말하는 거나
사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목사는 설교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해 설교 준비를 했다.
심지어 심방을 하면서도 김 목사의 모든 신경은 설교 준비에 가 있을
정도였다. 김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을힘을 다해” 설교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준비한 설교는 역시 효과가 있었다. ‘은혜 받았다’며
김 목사의 설교를 인정해 주는 성도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성도들의 그런 반응 때문에 김 목사는 성도들이 설교 메시지대로
변화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반응은 뜨거웠지만,
반응 그 이후에 남는 것이 없었다. 성도들은 주일이 지나자마자
설교의 주제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리 감동적인 설교를 해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김 목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설교로도 안 된다면 무엇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심정은 제가 목사로서의 소명을 받은 것이 아니든지
아니면 능력이 없는 종이든지 둘 중에 하나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낙심이 되더군요.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설교를
준비했는데 그 설교에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실망이 됐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김명섭 목사의 고민에 응답하셨다. 우연히 읽은
교계 신문에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의 등록 광고를 본 것이다.
어디선가 제자훈련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김 목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미나에 등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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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300명 모이는 교회에서 구역장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구역장이 어떻게 말하느냐 그리고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에
따라
성도들의 판단도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서울 대광교회
구역장들이 제자훈련에 실패했다는 것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김명섭 목사도 “구역장들이 ‘제자훈련은 힘만
들고 별로
좋은 것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과연 2기 제자반이
제대로 모여질지 걱정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듬해 모집한 2기 제자훈련은 자원자들로만 2개
반을
모집할 수 있었다. 이유는 자원자들로 구성됐던 1기
제자반
수료생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자훈련을
소개하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맛있는 음식점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맛있는 음식점은 굳이 요란하게
광고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부터 손님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음식점의 맛을 아는 사람들이 소문을 내기 때문이다.
대광교회의 제자훈련도 마찬가지였다. 제자훈련을 통해
변화의
맛을 본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의 열매를
숨기지 않았다.
결국 그때부터 대광교회는 제자반 모집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도들에게 일어난 변화는 어떤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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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김명섭 목사의 말을 들어보자.
“흔히 ‘변화’ 하면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잖아요. 하지만 우리 교회가 제자훈련
초기에 경험한 변화는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원래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
외부에서 새 신자가 들어오면 자신이 선택하도록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새 신자에게 등록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새 신자들 중에
우리 교회를 보고 ‘냉랭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제자훈련을 하고
나니까 새 신자가 오면 적극적으로 달려가서 관심을 표현하고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으실지 모르지만, 우리 교회로서는 그런 태도의 변화가
참 놀라운 것이었어요.”
그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된 변화의 눈덩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새 신자들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예배의 변화로 이어졌다. 한 마디로 예배 시간이 뜨거워졌다.
특히 설교자로서 김명섭 목사가 느끼는 변화는 더욱 컸다. 예전에도 성도들은 김 목사의
설교에 잘 반응해 줬다. 하지만 설교자로서
김 목사는 성도들이 얼마나 자신의 메시지대로
살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제자훈련을 실시한 이후에도
성도들의 반응은 여전히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명히 성도들의 모습에서 변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김 목사가 전하는 메시지 속에 성경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제자훈련을 통해
성도들의
삶에서 나온 문제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태도가 아니라 설교자의 메시지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사역에 성도들이
참여하는 모습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전도하는 일이나 중보기도 사역에 제자훈련
수료자들이 앞장서서 헌신했다.
전도대나 중보기도 팀 모두 90% 이상이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이었다. 사역에 헌신할 기회는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졌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한 사람들은 바로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교회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헌신한 일꾼들이 생기자 120평 상가 예배당에서는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
없을 정도로 교회가 성장했다. 김 목사는 그때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자훈련 때문에 수지맞은
사람입니다. 제자훈련 때문에 목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고, 본질적인 사역에 집중하니까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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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때문에 목회의 본질을 알게 됐다는 김명섭 목사. 그가 생각하는 목회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김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저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하는 것 그리고 성도들을
잘 훈련
시켜서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전도만
강조하고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또 어떤 교회는 전도는 안 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기만 해요. 그런 점에서 제자훈련 하는 교회가
목회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제자훈련 하면 영혼 구원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과연 김명섭 목사는 얼마나 자신의 생각대로 목회를 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김 목사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 중 대부분이 우리 교회에서 처음 예수 믿고 훈련받은 후 장로 안수를 받은
사람이고 심지어
수석장로도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즉, 성도들 중 상당수가 대광교회를 통해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고, 김 목사는 이들 중에
좋은 사람들을 훈련시켜 목회의 동역자로
세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 앞서 대광교회를 다니던 성도들 중에는 장로로 피택 될 만한 일꾼이
없었던 것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대광교회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40대로 젊은 그룹이고, 게다가 기존에
대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일꾼들은 나이로 볼 때 장로로 피택 된 자들보다 훨씬 연배가
아래라는 것이다. 따라서
조금 늦게 대광교회를 등록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훈련받고 장로로
피택 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게 김 목사의 대답이다.
결국 이런 상황 때문에 임직자 투표와 관련해서 성도들 사이에 쓸데없는
경쟁의식이 없었고,
그렇게 선출된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목회를 하다 보니 목회하기가 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목사의 말이다. 우리는 이미 제자훈련 때문에 목회가 쉽다고 말하는 수많은 제자훈련
모델교회
목회자들을 보았다. 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자훈련을 통해 담임목사와
함께
건강한 목회철학을 공유하다 보니 목회자가 쓸데없는 데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은 다르지만, 대광교회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목회의 본질에 집중하게 될 때, 목회는 분명 큰 유익을 본다는 것이다.
교회의 일꾼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키워서 세우는 것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 목회자에게 또 있을까?
그렇기에 김 목사는 세간에서 유행한다는 여러 가지 방법론과 프로그램들에 전혀 마음을 뺏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김 목사는 더 값진 진주를 가진 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질적인 사역에 마음과
온 힘을 집중하다 보니 교회로서도 힘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고, 결국 이것이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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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지식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배우고 배워도 또 배우고 싶은 게 사람들 마음이죠.
오죽하면 평생
교육이라는 것도 생겼겠습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은 배우는 게 아니거든요.
배웠으면 배운 대로 살게 해야
죠. 훈련을 받았으면 훈련받은 대로 살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자훈련을 마친 뒤에도 계속해서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성도들에게 ‘사역하면서 스스로 배우라’
고 말합니다.
실제로도 소그룹에서 사역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고요.”
김명섭 목사는 훈련 프로그램은 최소화하고, 대신 사역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역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제자훈련 기간 동안 모든 것을
다 가르치려는 것도 욕심이라는 것이
김 목사의 생각이다. 대신 실제로 순장 사역을
하다 보면 그때 배우는 것이 더 많고,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
도 더 많이 변화와 성숙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 목사는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전도와 양육 사역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도를 하다 보면
목회자가 한 영혼에 대해 느끼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고,
양육을 책임지다 보면 한 영혼을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
김 목사의 생각이다. 그래서 전도와 양육을 잘하는 사람은 당연히
목회를 책임지는
담임목사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대광교회에는 이렇게
사역하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서 교회를 옮긴 사람 중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부터 전도사로
사역하도록 임명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아는 김명섭 목사의 친구 목회자들은 김 목사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김 목사는 ‘부러워만 하지 말고, 당신들도 제자훈련을 해서 사람을 키우라’
고 권면한다. 이런 김 목사의 강력한 권유에 가장 가까운 친구 두 명이 제자훈련지도자
세미나에 갔다 왔지만 아직까지 제자훈련을 시작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김 목사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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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동 120평 공간을 11년
간 예배당으로
사용하면
서 대광교회는 장년만 450명,
주일학교를 포함
하면 800여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문제는 성도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공간은 한정됐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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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광교회는 예배당 공간을 옮겨야만 했다.
처음 옮길 때는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것이
이유였다면,
두 번째 이전은 주어진 공간에 비해 성도들이 너무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김 목사는 예전에 하나님께서 교회가 이전할 장소를 보여주셨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을
경험했다. 신문에서 중랑구 신내동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기사를 본 것이다.
김 목사는
이 사실을 교회에 알렸다. 그리고 종교 부지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교회를 옮기기로 결정
했다.
그렇게 해서 대광교회는 신내동 지금의 자리로 교회를 옮겼다.
그런데 대광교회가 분양받은 종교부지도 사실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었다.
대지 200평 땅에 예배당을 지어봤자 800명 성도들을
다 수용할 만한 건물은
결코 세울 수 없었다. 그때 김 목사는 기왕에 사랑의 교회 목회를 배우기로
한 이상 아예 예배당 형태까지 따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즉, 본당을 지하실로 넣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광교회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결국 본당을 지하실에 건축하고 지상에는 주차장과 교육 공간
을 세웠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교육관이 결코 작지 않은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다.
교회 건축이 끝나고 교회 이전이 완료되면서 대광교회는 목회 환경으로는
최적의, 그야말로 모든 교회가
부러워할 만한 교회가 되었다.
넓은 예배 공간과 제자훈련을 통해 세워진 역량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에 교회가 신내동 대규모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세워지다 보니 나가기만 하면 추수
할 대상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지난 8년 동안 대광교회는 대 각성 전도 집회를 통해 매년 250명의 불신자
들을
주께로 이끄는 놀라운 추수의 감격을 맛보고 있다. 그 8년 동안 교회는 약 3배가량
성장하여, 주일 낮
예배 장년 출석인원만 약 1,600명에 이르고 있다. 약 800여 명이
출석하는 주일학교 학생들까지 하면
한 주일에 약 2,000여 명이 모여 예배드리는
대형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김명섭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 좋은 환경을 갖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영적 추수의 능력을 갖춘 그리고 그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역량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갖지 못했다면 오늘과 같은 열매를 얻기
어려웠을 겁니다.”김 목사의 말에 의하면, 대광교회의 새 신자
정착률은 75%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 목사의 말에 의하면 신내동 지역의 상황에 비춰볼 때
정착률 75%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 새 신자 한 명마다 바나바 한 명이 붙어서 정착을
도와주는 새 가족 모임과
탁월한 역량을 갖춘 순장이 있는 다락방이 아니었다면,
대광교회는 결코 오늘날과 같은 열매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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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지역은 인구 이동이 심한 곳입니다. 게다가 인근에 수만 명의 감리교 최대의
교세를 자랑하는 교회가
옆에 있기 때문에 웬만한 경쟁력을 갖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하기 어려운 지역이지요. 저희 교회도 일꾼이
다 싶어서 제자훈련을 시켜 놓으면
이사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럴 땐 맥도 풀리고,
‘이런 상황에서 제자훈련을 계속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까지 들죠.”
김 목사의 말에서 우리는 대광교회가
겪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서 성도들이 김 목사를 가리켜 ‘훈련소
장’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기껏 훈련시킨 사람들이 정작 이사 가서 다른 교회에서 사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김 목사를 위로하기 위해 지어준 별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이동이 심한 지역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400명 모이던 교회가 1,600명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광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신내동에서 아홉 번째 해를 맞이하게 된 김명섭 목사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최근 들어 예배 출석인원이 거의 1,600명 수준에서 정체된 것이다. 전도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새 가족 정착률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성도들의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주원인이었다. 그런데 김 목사는
바로 이 시기에 대광교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다.
그가 선택하려는 방향은 교회가 정체되는 원인을 해결해서 더 큰 교회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
세계 선교에
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교회가 커지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 목사는 대광교회가 1,000명 넘는 교회로
성장한 데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대광교회에 주어진 숙제는
그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는게
김 목사의 생각이다.
김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지도자들에게 세계 선교에 대한 사명을 강조할 계획이다.
그들을 통해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김 목사가 갖고 있는 새로운 대광교회의 비전이다.
그리고 자신
도 목회를 은퇴하고 나면, 그 선교지에 가서 사역을 감당하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최근 들어 김명섭 목사
는 여러 젊은 목회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김 목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젊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예 목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것이 김 목사의 말이다.
그들을 보면서 김 목사는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옛날에는 모델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는데 반해, 오늘날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는 시대잖아요. 이런 시대에 목회를 하면서 목회의 본질이 뭔지도 모르고
목회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일이지요. 이미 선배들이 다 해놓은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되는데 말이에요.”
하루라도 더 빨리 제자훈련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는 김명섭 목사.
하지만 그도 이제 제자훈련을 17년간 실시한 경험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대광교회라는 목회 현장을
통해 제자훈련의 열매를 직접 체험했다. 제자훈련 사역의 선배로서 김명섭 목사가
후배 목회자들에게 던지는 충고는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김명섭 목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을 통해 본질을
붙잡는 목회를 시작할 것을 주문했다. [끝]
[사랑의 교회 부설 국제제자훈련원 발행 월간 Disciple 2006-3월호 내용 박순종 목사 취재기사]
위 기사는 월간 <디사이플>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기사임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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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1987 월간 <디사이플>은 주님 주신 대 사명을 따라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제자되어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형제교회의 동역자들과 함께합니다.
또한 월간 <디사이플>은
제자훈련 목회현장을 두드리는 북소리가 되고자 합니다.
월간 <디사이플>을 통해 목회에 도전을 받아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